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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요약정보 및 구매

김언희 시집, 문학동네포에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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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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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문학동네가 우리에게 그리움이 된 시, 오랜 명성으로만 남았던 이 시대의 시들을 새롭게 펴낸다. 김언희의 『트렁크』로 문학동네포에지의 첫 문을 연다.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1995년 첫 시집 『트렁크』를 내놓은 이래, 시인은 누구보다도 첨예한 칼이자 가장 도발적인 ‘시체’의 자리를 자처해왔다. ‘문학이라는 형태를 빌린 고문대’(남진우) ‘세계와 성교하는 시인’(이병철) ‘도살장의 언어’(최승호), 이 시인과 시집을 가리키는 수식어만으로도 그 시세계를 단박에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새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선보이며 첫 시집만으로 평가-재평가의 뜨거운 논쟁을 피워올린 시인은 어떠한 동요도 치우침도 없이 그 날카롭고 적나라한 세계의 민낯을 내보이며 나아왔다. 때로는 강도 높은 과감한 언술로,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다는 저릿한 경고로(『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사, 2000), 삶과 고통이라는 숙명까지 보다 널리 뻗어가지만 ‘끝 간 데 없는’ 전복의 시도는 언제나 지금-여기다. 30여 년간 6권의 시집을 통해 “이전의 여성시 대부분을 내숭으로 만들었고 이후의 여성시 상당수를 아류로 만들어버”린(신형철) 시인은 여전히 ‘여성의 몸’이라는 전장의 한가운데다.


    아물어 붙지 않는, 쩌억

    갈라진


    그 시력의 첫머리, 『트렁크』에서 시인은 ‘그로테스크’와 ‘섹슈얼리티’라는, 이후로도 꺾이거나 후퇴하지 않고 나아갈 시의 알속을 거침없이 열어보인다. 고통의 축에서, 송곳니로 턱을 꿰뚫리는 일은 예사이며(「송곳니가 아래턱을」), 입을 찢어가며 “이빨이 모조리 쏟아져 흩어지”도록 웃거나(「너는」), 테이블 위 해부용 개구리로 깨어나 “내장을 질질 끌며 달아나고”(「……?」), 쑤셔박고, 구겨박고, 조각내고 터뜨리는 현장의 연속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육시처참” “능/지/처/참” “거두절미”의 세계다.

    이 도발은 성(性)의 축에서도 다르지 않다. “뜨거운//생의 배꼽 위에서//복상사//하는 것만”이 꿈이 되고(「꿈의 전부」), “저 혼자 삐걱이며 자위를 하”는 침대 스프링 위에서 “해면체 아버지”에게 작으냐고, 더 긴 시간 원하냐고 물으며(「HOTEL ON HORIZON」), “한시간이고/두시간이고한다”. “왜하는지” “무엇/과,하고있는지도” 모르면서 “무릎과팔꿈치가벗겨지”도록 할 뿐이다(「한다」). 이것은 “백 살까지/발기할” 지치지 않는 세계의 틈새(「이봐, 오늘 내가」), 질, 음경, 유방, 치모들의 세계다.


    물이 되는 살의 공포


    『트렁크』에서 고통과 쾌락은 하나의 육체에서 벌어지는 정황이자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진 한 ‘덩어리’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 덩어리, 육화(肉化)한 인간이란 비유가 아닌 ‘고깃덩어리’ 자체다. 인간의 몸은 “손톱발톱이길어나는” “포장육”(「의자였는데」), “날 때부터 고기”였던 것. “고기가 낳은/고기”(「태어나보니」)와 다름없다. 그러므로 고통도 죽음도 으레의 일이고, 식욕도 성욕도 시 속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토막난 육체는 “난//시체야!” “내겐/썩는 일만 남았어!” 외치지만, 시체야말로 이 세계의 주인일 것이다. 이 ‘살아 있는 시체들’은 말하고 외치고 매달리며 끈질기게 욕망한다. 주검에선 시취와 점액질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세계는 피와 고름, “배설물” “개숫물” “죽어서 떠오른/식구들의 추깃물” 따위의 축축하고 불순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이 세계의 진짜 ‘죽음’은 시체의 모습이 아니라 절단되지도 썩지도 못하는 말라비틀어진 것, “냄새를 풍기며 썩어갈 수분/조차도 없”이 “아무도/베어주지 않는 죽은 가로수”(「4장 4절」)다.

    출간으로부터 25년이 지난 시집이 지닌 부단의 생명력, 그 근원이 이 끈적이는 오염물, 점액질의 힘에 있다. 상처 나고 갈라진 곳에서 피와 오물이 쏟아질 때, 이 또한 하나의 생성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찢김으로써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걷잡을 수 없고 불온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범람한다. 찢고 가르는 일은 이 ‘금기된 것들’의 입구를 여는 일이다.


    이 가죽 트렁크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지퍼를 열면

    몸뚱어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어지는


    수취 거부로

    반송되어져 온


    토막난 추억이 비닐에 싸인 채 쑤셔박혀 있는, 이렇게


    코를 찌르는, 이렇게

    엽기적인


    ─「트렁크」 전문


    시집의 표제작이자 첫머리에 놓인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이미 시집 전체를 열어보이고 시작한 셈이다. “가죽 트렁크”가 된 육체, 지퍼를 열면 그 “몸뚱어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어”진다. 거대한 아가리는 무엇이든 삼키는 입구이면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구멍이다. 시는 이 “엽기적인” 열림을 수습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데, 이 갈라짐, 이 상처는 여성으로서 시인의 원형인 탓이다. “아물어 붙지 않는, 쩌억/갈라진” 것. “흉터 없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명약은 없음을 시인은 알고 있다(「마데카솔」). 상처를 봉합하기는커녕 존재 자체를 거대한 상처 삼아 열어버리는 일, 갈라짐을 기어이 문으로 만드는 시집.


    처박힘의 힘으로/ 삶은 나를

    나는 삶을/ 튕겨올리네


    김언희의 시집은 우리 시사에 남긴 눈부신 상처다. 『트렁크』가 ‘문학동네포에지’ 시리즈의 첫머리에 있는 연유이기도 할 터다. 김언희의 찢는 행위는 세계에 생채기를 남기는 대신 세계 자체를 열어젖힌다. 그러므로 이 시집이 우리에게 낸 상처는 고통이 아니라 생성의 문일 것이다. 피와 오물이, 추방당해야 한다고 믿어온 것들이 실은 세계의 진실이었음을 폭로하며 쏟아져나오는 입구.

    시인의 이전과 당대에 여성의 언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시집이 여전히 살아 있는 한 ‘원형’인 것은 그 때문이다. 상처받기 이전의 모태로 돌아가거나 모성을 통해 다음을 수태하는 방식은 시인의 선택지가 아니다. 그는 상처를 극한까지 벌림으로써, 토막치고 “까뒤집혀지면서” 미래 쪽으로 ‘살아 있는 오물’을 뱉어낸다. 여성의 목소리가 나아갈 길의 선두에 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길을 내포한 ‘트렁크’인 셈이다.

    2005년 겨울 『시와 세계』 대담에서 시인은 “세계는 몸뚱어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외부 세계에 진실이 숨어 있다는 시의 격언을 믿지 않는다. 시인의 ‘몸으로 체험된 것만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내포한 세계는 시인의 몸속에 있기 때문이다. 시의 언어가 시인에게 진실인 한, 이 시집은 문제나 질문이 아니다. 김언희가 마련한 장에서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목소리를 꺼내놓는다. 시인의 시는 수없이 많은 ‘다음’으로 갈라질 것이다. “천 개의 잎” “천 개의 비명”이 되어, “찢어질 수 있는 한 살아 있을 수 있”음을 끝없이 내보이며(「잎, 또는」).

    자신의 시, 그 앞날을 열며 시인은 선언했다. “고양이는 주인을 선택한다.//이 시편들 역시 독자를 선택할 것이다. ……배반하려고.” 한때 “수취 거부로/반송되어져” 왔으나 오늘 우리 앞에 활짝 열린 트렁크. 그 “코를 찌르는, 이렇게/엽기적인”(「트렁크」) 진실은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유혹이 될 것이다. 고양이가 주인을 선택하듯 이 시는 우리를 택했고, 이제 우리가 이에 응할 차례다.


    이 집요한, 주검의

    구애를


    받아다오

    당신


    ─「모과」 부분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트렁크
    저자 김언희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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