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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빈 시인의 첫 시집이자 어른의시간 시인선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흑산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도시에서 학업과 기자 생활을 마친 뒤 섬문화 다양성과 태평양 기후 위기 대응 일을 하고 있는 시인이 바다, 섬,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를 주제로 노래한다. 오지 않을 존재들을 기다리고, 유년의 한때를 회상하며, 세상의 모든 연약한 이들을 호명하는 시인의 노래 70편이 독자의 마음에서 철썩인다.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였으되
불현듯 오래된 악기가 불러 주는 음유가 되는 사람
생래적 시인이란 이런 것이다.”
_ 류근 (시인)
취약함을 정체성으로 삼아 전면에 드러내는 삶과 시
_ 연약한 존재들을 노래한다는 것
밝음과 어둠, 흥함과 쇠함, 편리함과 불편함, 활기참과 고적함. 세상이 만약 이런 식으로 이분된다면 대개의 사람은 앞의 것을 택한다. 그편이 현실을 살아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써 뒤의 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주빈 시인도 그중 하나다.
대도시에서 학업과 기자 생활을 마친 그는 활기차고 편리하며 밝은 타향을 떠나 어둡고 불편하고 쓸쓸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하도 멀어 섬 천 개는 징검다리 삼아 건너야 갈 수 있는 섬”, “울울창창 바다보다 깊은/푸르다 못해 검은 산 ”, “천주쟁이 정약전, 왕의 도포를 훔친 상궁/가다 죽으라 보낸 유배지”(내 고향은 흑산도)였던 곳이다. 돌아간 정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섬문화 다양성과 기후 위기 대응 일을 할 뿐 아니라 그곳을 배경으로 수십 편의 시를 쓰기에 이른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서적 뿌리가 돼주는 고향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 고향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살지는 않는다. 수도권에서 먼 곳일수록 지역 소멸의 속도가 빠르고, 사라지는 것들은 외면받기 십상이기에 드러내면 손해일 때가 많다. 이런 풍토 속에서 이젠 이색적인 여행지, 특별한 문화 체험 공간 정도로 유지되는 흑산도로 돌아가 마치 취약함을 정체성으로 삼으려 작정한 듯 고향을 배경으로 한시 70편을 지어내 세상에 내보였다. 얼핏 흑산도의 소멸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결의인가 싶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박남준 시인의 말대로 “시집을 펼치면 징긍징글 징하다. 지독하다. 시집의 온통이 검은 흑산의 바다다. 그 섬에 갇힌 외롭고 쓸쓸한 그리움이 무”서울 정도다.
“꽃을 기다리는 날에는/묏등 삐비꽃도 피지 않았다//파도를 기다리는 날에는/잔놀조차 일지 않았다.//기다리는 날에는/모두 오지 않았다//객선머리에 머리를 덩덩 찧으며 통곡을 해도/바윗돌에 심장을 북북 갈아 피를 토해도//어미는 오지 않았다/사랑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라는 시에서 그가 “통곡”하고 “피를 토”한다고 말할 때 무언가를 지키고 관철하고자 하는 결의보다는 비통함과 고독함이 전해지며, 이로 인해 이 작은 시집은 더 이상 작지도 가볍지도 않아진다. 어째서 그는 지독한 쓸쓸함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 오지 않을 존재들을 그리워하는 걸까. 어째서 불편함과 고독함을 대면하다 못해 연약한 존재들과 하나 되려 할까. 그의 많은 시가 답변해주고 있다.
그곳은 한때 “참고래 대왕고래 흑등고래 귀신고래/나고 자란 고래들의 고향”이며, “가진 거라곤 아득한 눈물뿐인 어미가/아비와 함께 늙어” 갔던 곳이고(내 고향은 흑산도), “쫓아갈 힘도/ 가로챌 욕심도 없는 섬사람은/그저 하늘 바다만 바라보고”(섬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꼿꼿한 허벅지에 손주 재우던 할므니”가 살던 곳이고(흑산도 사리상회), “섬마을 아이들 좁은 등에/차크르 서린 소금 알갱이/인산 솔숲 성근 낙엽 밀고 다니는/미역 줄기 같은 바람 닦아 주던 /까맣게 흰 /어린 동무들 살냄새”를 품었던 곳이고(향수), “잘 계시요?/쫌만 기다리시요/흰 상여꽃 같은 소원등을”(목포 만호진 소원등) 다는 사람이 아직은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추억 속의 거의 모두가 없으나 여전히 시인의 기억과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 있는 곳, 아직은 그곳이 전부인 양하는 이들이 사는 곳, 그렇기에 이젠 떠날 이조차 드물어진 그곳을 시인은 차마 버리지 못한다. “이웃집 옥상에 버려진 맥주 캔”(한때 내가 너의 지문이었듯), 그 위에 살포시 쌓인 눈조차도 외면하지 못하는, “나는 개망초/오로지 가난한 자들에게만 보이고/오로지 힘없는 자들에게만 사랑이 되는//흔해서 따순, 당신의 밥”(개망초꽃)이라는 시인의 성정 때문이다. 홍성식 시인의 말대로 그것은 「흑산도 사리상회」를 드나들던 피붙이와 이웃들 속에서 형성된 시인의 선량함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린 섬의 신화적 일상과 사라져가는 남도어를 불러오다
_ 타고난 시인이란 이런 것
시집의 물리적 배경이 되는 흑산도는 과거 고래의 섬이었다. 어느 해 겨울, 흑산도 사람 몇몇이 바다에서 조업하던 중에 돌풍을 만나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래 한 마리가 다가와 뒤집히기 전의 어선을 바로 세웠다. 고래가 자신의 등판에 실어다 준 것이다. 전설이 아닌, 흑산도 박씨 집안 족보에 기록된 백 년 전의 실화라고 한다. 강제윤 시인의 말대로 “흑산도 사람 이주빈이 ‘섬 아기들은 고래 등에 올라 피리를 분다’라고 노래하는 것은 은유가 아닌 섬의 신화적 일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제강점기 무차별적으로 포경되었던 탓에 지금은 그 고래들이 신화처럼만 회자되고 있으나, 놀랍게도 이주빈의 시를 통해 “잃어버린 신화와 일상이 공존하던 시대, 한없이 외롭고 애잔하고 따뜻했던 섬의 이야기들이 그의 시 속에서 섬의 신원을 확인해 줄 지문처럼 되살아난다”.
더욱이 “여렵다” “짝지밭” “소징하다” 등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볼 수 없는 남도 지역 특유의 구성진 어휘를 통해 다양한 우리말을 만나는 것 또한 독자에게는 즐겁고 값진 경험이다. 시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통해 이주빈이라는 사람 하나가 섬의 지문이 된 셈이다.
소멸해가는 섬에서 태어난 사람, 자신을 유폐하듯 적막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 그 속에서 그리움과 쓸쓸함을 울음인 듯 노래인 듯 부르는 사람,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였으되 오래된 악기가 불러 주는 음유가 된 사람. “생래적 시인이란 이런 것”이란 류근 시인의 말이 과장이 아니게 다가오는 이유는, 시인의 태어남과 삶의 방식이 그대로 시가 되었기 때문 아닐까. 접기
도서명 |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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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주빈 |
출판사 | 어른의시간 |
출간일 |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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