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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도구 삼아, 수많은 도시의 이면을 살피는
각국 도시 생활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를 읽는 법
우리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일까.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이자 기반으로 삼는 곳이면서 동시에 ‘도시에서의 삶’이란 피곤하고 복잡한 일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뿐일까. 어떤 이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면서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선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이 도시를 떠나 저 도시로의 이주를 꿈꾸기도 하고, 짧은 시간일지언정 다른 도시로의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미국인으로서 세계 곳곳의 수많은 도시를 경험하고 살아온 로버트 파우저가 바라보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에서 태어난 그는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경험한 도쿄에서의 두 달 이후 오히려 미국보다 다른 대륙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그에게 도시는 곧 삶의 터전이자 기반이었으며, ‘도시에서의 삶’이란 인생의 터전이자 중추이기도 했다.
한국 독자들에게 미국인으로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는 눈에 띄는 이력으로 익숙한 로버트 파우저의 책 『도시독법』은 그가 태어난 곳부터 시작해서 도쿄, 부산, 서울, 대전, 더블린, 런던, 구마모토와 가고시마, 교토, 라스베이거스, 전주와 대구, 뉴욕, 인천을 거쳐 지금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까지 지금껏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여러 나라 열여섯 곳의 도시에 관해 쓴 것이다.
영어를 모어로 삼고 있으나 일찍부터 숱한 언어의 순례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도시를 거쳐 살아온 그에게 도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는 어떤 도시에서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서 도시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 자신이 밟고 선 땅’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왔다. 그가 주로 주안점을 두고 보는 것은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지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였다.
이런 그의 관심사에 따라 그는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모어가 다를지언정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기보다 도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 도시의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자가 되었다. 언어는 새로운 도시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 도시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도시와의 각별한 관계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십수 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많은 도시는 그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이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며, 오랜만에 찾아가도 늘 반가운 제2의 고향이 되기도 했다.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가’를 되묻게 하는
도시 생활자, 로버트 파우저의 매우 복합적인 시선과 태도
『도시독법』은 그러나 도시에서의 삶을 반추하는 개인의 추억담이 아니다. 도시를 소개하거나 분석하는 책도 아니며, 여행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의 전달이 이 책의 목적도 아니다. 로버트 파우저에게 도시는 생활의 공간이자, 언제나 탐구 대상이다. 어떤 도시에 발을 내딛거나 살게 될 때 그는 이 도시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볼까보다 이 도시를 구성하는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며,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살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눈에 들어오고,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관심사는 더욱 더 깊고 넓게 펼쳐진다. 그에게 도시에서의 삶이란 인생의 이력과 족적의 동반체이면서 동시에 평생 관심사의 대상이다.
어떤 도시에서는 고교 시절 보았던 그 도시와 6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달라진 모습을 통해 그곳의 변화상을 좇기도 하고,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들과의 깊은 소통을 통해 도시가 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도시에서는 한발 떨어져 그야말로 관찰자의 시선으로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객관적인 제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또 어떤 도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나의 도시에 대한 그의 태도와 시선은 매우 복합적이다. 오로지 애정의 대상이거나 서늘한 판단의 대상으로 하나의 도시를 규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도시일지언정 애정과 추억과 아쉬움과 비판, 이후의 제언이 개별 도시마다 빼곡하다. 이러한 특징은 도시를 바라보지 않고 도시와 함께 섞여 보낸 두터운 시간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책에 실린 도시 가운데 한국의 도시들만 우선 살피자면 서울, 부산, 인천, 전주와 대구가 있다.
그는 1983년 첫 만남 이후 2014년까지 약 13여 년 동안 서울에 살았다. 그 이후로도 코로나19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일 년에 두세 차례 한국에 길게 머물며 서울과 호흡하며 서울을 관찰했다. 1983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을 때 닿은 곳은 부산이었다. 그 이후로 한국에 사는 동안 그는 수시로 부산을 찾았고, 10대 후반 날카롭게 각인된 첫인상으로부터 출발, 수십 년에 걸쳐 도시와 관계를 맺어옴으로써 이 도시에 대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인천은 도시재생이라는 화두에 눈을 뜬 이후부터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서울에 사는 동안은 물론이고 이후로도 셀 수 없이 자주 찾으며 인천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이를 위해 인천의 곳곳을 걸었으며,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동네를 사진으로 기록해 전시를 열기도 했고, 때로 인천 어느 곳에 거처를 마련해서 깊이 들여다보기도 해왔다. 서울 외에 생활인으로 살았던 또다른 도시 대전 역시 그에게는 청춘의 추억과 변해버린 도시의 풍경 사이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전주와 대구도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대표적인 한국 도시다. 한국에 사는 동안 틈날 때마다 찾은 이곳에는 언제나 찾아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단지 여행자로 다니는 것이 아닌, 지역의 사람과 공간, 거리와 풍경과 깊이 관계를 만들고 가꿔오면서 일상을 나눠온 곳이라 그렇다.
각국 생활자답게 한국 이외의 행동 반경도 매우 넓다. 가까이 있는 일본 도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무려 40여 년 전부터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해외 도시인 이곳과 쌓은 시간은 어느덧 40년이 훌쩍 넘었다. 교토에서는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생활인으로서 6~7여 년을 살았고,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에서도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몇 해를 살았다.
이밖에도 책에 실린 뉴욕과 런던은 숱하게 다녀온 터라 골목골목이 모두 익숙하고, 고향 앤아버와 현재 거주지인 프로비던스, 유학생으로 머문 더블린, 어머니가 살고 있던 라스베이거스를 통해 여러 도시들마다의 역사와 현재,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공통적인 문제와 미래 가능성까지도 살피는 것은 이 책이 거둔 성취다.
그에게 도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삶의 기반이며 오랜 탐구의 대상이다. 전 세계 숱한 도시들을 때로 주유하며 때로 거주하며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도시의 특징과 특성이 고스란히 그의 몸과 마음에 축적되어 있다. 그런 그였기에 도시는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분석의 대상일 수도 없고, 동시에 단지 환상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꿈과 추억의 공간일 수만도 없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보통의 도시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미래를 꿈꾸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의 이동을 거듭하며 살았던 그의 삶의 족적은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이어서 어쩔 수 없이 매우 독특하다. 그런 그 덕분에 우리는 ‘도시란 무엇인지’, ‘도시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묻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 스스로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뿐만 아니라 여행지로 꿈꾸던 막연한 어떤 ‘도시의 이미지’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획득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쓴 도시 탐구기,
약 40여 년 동안 지켜본 숱한 도시들의 이면부터
코로나19팬데믹 이후 도시의 변화와 고민까지 들여다본 책!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를 주제 삼은 『외국어 전파담』, 언어 순례자인 그의 외국어 학습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담은 『외국어 학습담』을 통해 많은 독자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로버트 파우저에게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책을 쓰는 일은 더이상 새로울 것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작업이 쉽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2019년 이 책의 초판본 출간 이후 뜻밖에 경험하게 된 코로나19팬데믹을 겪으며 익숙했던 도시들의 악전고투를 미국 프로비던스에서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했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을 관통하며 이전에 펴낸 책을 다시 훑으며 전면적으로 다시 정리하는 마음으로 집필했다. 오랜 시간 구상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도시라는 대상에 대한 여러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렇듯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도시를 섭렵하며 도시의 생활자이자 탐구자, 관찰자로 살면서 수많은 언어를 순례해온 그였기에 풀어놓을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우면서 생생한, 그러면서도 본격적이면서 위트 넘치는 제대로 된 도시담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살고 싶은 도시를 넘어 살 수 있는 도시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기후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 전쟁과 전염병 등을 통해 인류가 마주한 생존과 직결한 문제 앞에서 살고 싶은 도시 이전에 살 수 있는 도시를 위해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함께 나서자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에 과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도서명 | 도시독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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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로버트 파우저 |
출판사 | 혜화1117 |
출간일 |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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