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설이』
소설가 심윤경, 20년 만의 첫 에세이
제대로 사랑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밥숟가락 뜨는 법도 잊어버린 할머니가 된 내가 의미 없이 환하게 웃고 있다면,
그때 나는 나만의 위대한 성취를 해내는 중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설이』의 작가 심윤경, 20년 만의 첫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정원』 『설이』 등 독자들의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받아온 소설가 심윤경이 작가 활동 20년 만에 에세이를 펴냈다. 2002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첫 책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의 첫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엔 다행히 동구 할머니나 아버지는 없다. 실제의 할머니는 외려 작가가 죽을 때까지 닮고 싶고,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위대한 사랑을 전해주신 분이다. 우리 시대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한 이중성과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한『설이』에서도 작가는 아이가 성장하기 위한 좋은 환경은 무엇인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사랑이 달리다』에서는 폭주하는 주인공 김혜나와 가족들을 통해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하는 어른들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영원한 유산』에서 해동의 고모나 진형의 가족들이 보여준 믿음은 작품을 끌어가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심윤경 작가는 매번 쓰는 작품마다 스타일이나 주제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새롭지만 그 세계를 관통하는 화두 중 하나는 늘 가족과 사랑이었다. 작가는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통해 할머니와 함께한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아본다. 그 돌아봄에는 자신이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했던 양육의 시간이 들어 있다. 자식을 키우면서 수많은 책들과 강연으로 부모 역할을 연구하고 연마하던 작가는 할머니가 주신 사랑이 그 어떤 육아 현인의 가르침보다 더 뛰어났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가 남긴 위대한 사랑의 성분을 작가 특유의 정확한 분석과 생생한 복원을 통해 옮겨 놓는다.
할머니의 다섯 단어, 할머니의 유산
작가는 아기에게 ‘꿀짱아’라는 예쁜 애칭을 붙여주고 야심차게 엄마의 길로 들어섰지만 서툰 새내기 엄마의 일상은 그야말로 ‘이불 킥’의 연속이다. 물론 읽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웃음 버튼이지만. 똑똑한 아이를 향한 한국인의 피가 불러낸 ‘힘센 다리 한일전’과 까다로운 아이 돌보기에 지쳐 쓰러질 무렵 강아지와 놀아주다 깨우친 육아 비법, 늦을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엄마와 느긋한 사춘기 아이의 모습, 설거지로 티격태격하다 “Do I look like water?”라는 실없는 농담으로 무마한 뒤 혼자 열폭하는 장면 등은 우리네 모습과 똑 닮아 있다. 어린 생명체의 성장에 크게 관여하는 양육자로 살면서 마주치는 고비마다 작가는 자연스레 할머니를 떠올린다. 심하게 낯을 가리고 생떼를 쓰는 아이 앞에서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때 자신의 유난한 어린 시절과 그를 말없이 보듬어준 할머니의 관용을 기억해낸 것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이자 심리적 안전판이 되어준 할머니의 모습을.
작가의 기억 속에 할머니는 ‘말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할머니가 평생 한 말들의 80퍼센트는 단 열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다. 표준어로 하자면 ‘그래, 안 돼, 됐어, 몰라, 어떡해’일 것이다. (101쪽)
이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 언어에는 지금 당장 우리가 따라야 할 지혜와 깊이, 공감과 이해의 의미로 가득하다. 작가는 할머니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들을 했고, 지금 우리에게 이 단어가 왜 필요한지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심윤경은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언어의 과용이 오히려 독이 됨을 깨닫고, 언어의 미니멀리스트였던 할머니의 다섯 단어를 실천하려고 애썼다.
최선이라는 환상 버리기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 심윤경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교육 격언인데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증명한다. 수험생 시절 공부하라며 엄마가 자신이 좋아하던 책들을 싹 치우고 문제집을 잔뜩 넣어줬는데,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박경리 작가의『토지』를 발견하고 30권을 독파한 경험이 오히려 소설가가 되는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를 실천한 엄마의 교육과 사랑 덕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작가는 사십 대의 어느 날,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감정에 휩싸인다. 무기력함 속에서 휴대폰 게임 속으로 도피하기도 하고, 심지어 난독증까지 겪고 만다. 소설 속 동구가 겪은 그 증세가 자신에게 나타난 것이다. 늘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의 상황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분석하는 작가답게 심윤경은 자신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리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고양이와 식물들을 돌보며 자신을 웃게 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 시기가 마치 사춘기 청소년과 완전히 똑같은 상태였기에 그는 입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우울과 난독의 기간 동안 ‘최선과 열심’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만큼 까다롭고 엄격하게 들이대던 잣대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가 지금 해낼 수 있는 만큼이 최선이고 열심이고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그는 한심하고 생각이 없어서 휴대폰 게임을 하며 웃는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사이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있지만 인생은 길고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라고. 이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설이』다.
절반은 할머니처럼, 비 더 그랜마
심윤경 작가의 이런 분투를 할머니가 보셨다면 분명 “장혀”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자신의 성취와 상관없이 ‘장하다’고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할머니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꿀짱아에게 함께 사는 할머니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거대한 빈 구멍을 내가 인식한 날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무턱대고 믿어주고 기특하게 여겨주는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전에는 그런 존재들이 함께 살았는데 이제는 함께 살지 않는다. 내 딸에게 꼭 필요한 어떤 것이 없다면, 내가 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꿀짱아의 엄마지만, 절반은 할머니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162쪽)
오늘날에도 조부모는 손주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분들이지만 한집에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작가는 이제 할머니 같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할머니처럼 남의 상처를 알지만 헤집지 않고 알면서도 모른체해주는, 무심한 이해를 보여준 딸과 지나친 기대와 격려 대신 부담 없는 편안함으로 두려움을 떨치게 해준 좋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윤고은 작가는 추천사에서 ‘심윤경의 소설을 읽을 때면 자신을 흔들어놓는 이야기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는지 궁금했는데 그 중심에 할머니가 있었음을 알았다’고 밝힌다. 이 사랑스러운 에세이는 받은 사람이 받은 줄도 모르게 하는 작은 평화,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로하는 일상, 소리 없는 함박웃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채워가는 것이 할머니가 없는 시대의 좋은 사랑법임을 일깨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처럼 웃었다.
내가 할머니처럼 웃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웃었다. (208~209쪽)
도서명 |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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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심윤경 |
출판사 | 사계절 |
출간일 |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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