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보이는 길이라고는 그 산으로 난 길 하나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 보는 수밖에.”
| 거대한 변화와 작은 변화
교단의 이름은 영천교. 하늘 그 자체가 인격화된 신, 하느님을 신으로 모신다고 알려져 있다. 교주인 박순영이 자신을 하느님의 대리자, 풍백(風伯)이라 칭하며 스스로 살아 있는 신을 자처했다. 내용만 들으면 전형적인 사이비였다. 게다가 풍백이고 천신이고 어디 단군 신화에서 대충 단어만 가져온 분위기가 풀풀 풍겼다.
“그런 짜깁기한 단어로 대충 만든 종교를 사람들이 믿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이해준 씨는 더 들어 보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말고 누가 듣는 것도 아니었는데.
“기본적으로 날씨에 중점을 둔 종교예요.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새롭게 떠오른 신흥 종교인 것 같은데, 기본적인 교리는 여느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 없이 이중적이고. 성경을 여기저기 잘라서 짜깁기했으니 앞뒤가 맞을 리가 없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교주인 박순영이 펼치는 주장이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겁니다.”
윤이안의 첫 장편 소설 《온난한 날들》은 탐정 소설이자 성장 소설, 기후 소설이다. “기후 위기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아이들에게 그런 미래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라는 자문에서 작가는 ‘선택하는 사람’ 박화음을 내세워 한 가지 가능한 미래의 물꼬를 튼다. 기후라는 거대한 변화에 맞서 박화음은 특유의 오지랖으로 타인 삶에 관여하며, 제가 속한 환경을 변모시켜 나간다.
나는 몇 가지의 사소한 선택을 했다. 실종된 아이의 전단 을 받아 들면서, 유골함을 품에 안으면서, 그리고 홀로 죽어 간 남자의 집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면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연쇄가 내 삶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이 자주 내렸다. 쉼 없이 돌아가던 공장의 불빛이 꺼졌고, 하수 종말 처리장에는 플라스틱 컵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에코시티에 사는 사람들이 선택하고 방관한 미래였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내 삶을 다른 길로 이끌었듯, 각자의 선택이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을까?
| 변하지 않는 것
마음 같아서는 이해준 씨의 차에다 토해 버리고 싶었다.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필이면 또 오픈 타임 출근인 날이었다. 집까지 걸어가다가 날이 샐 테고,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은 채로 다시 출근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고민하거나 말거나 몇 번 더 웃던 탐정 선생은 훌쩍 운전석에 올라탔다. 정말 얄미운 인간이었다. 내가 잘 가라고 인사하자 탐정 선생이 물었다.
“비닐봉지 좀 남은 거 있어요?”
남았으면 뭐, 어쩔 건데요. 내가 삐딱하게 묻자 이해준 씨가 조수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토해도 용서해 줄 테니까 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번개가 쳤다. 몇 초 뒤에 우르릉 하고 천둥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빗줄기가 또 굵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변화’에 맞서는 박화음은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의 주체이지만, 변화시키거나 소거할 수 없는 제 천성으로 괴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인간이기도 하다. 주변의 사념을 간직한 식물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 자동차에만 올라타면 구토하는 버릇, 타인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오지랖 등 화음의 모난 부분은 타인과 사회의 눈에 띄는 것은 물론, 본인에게도 줄곧 눈엣가시다. 하지만 탐정이라는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이해준의 등장으로, 어느샌가 에코시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하나둘 해결해 나가는 동안, 화음은 제 모서리들이 닳지 않으며 깎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좋은 무기가 됨을 깨닫는다. 기후 소설이자 탐정 소설, 성장 소설이기도 한 《온난한 날들》은 결국 개인의 모서리를 속속들이 더듬어 가는 모험과 그것을 마모시키지 않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도서명 | 온난한 날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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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이안 |
출판사 | 안전가옥 |
출간일 |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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