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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의 김장하에서 <백촌 강상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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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루터기
댓글 댓글 2건   조회Hit 1,154회   작성일Date 23-03-0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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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의 김장하에서 <백촌 강상호>까지


인도 다녀와 십여일을 병치레를 했다. 그 사이 2권의 책 <줬으면 그만이지>와 <백촌 강상호>을 읽었다. 사실 그 처음은 2022년 일본 백정들의 부락민운동인 <수평사>운동에 관심을 갖다가, 이듬해 2023년 진주에서 시작된 한국의 백정들의 <형평사>운동으로 관심이 연결되어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형평사운동에 지극한 관심을 갖고 기념사업을 해오신 <김장하>선생을 알게 되었고, 이어 그분에 대한 다큐멘터리 2편 <어른 김장하>를 보게 되었다. 경남MBC에서 만들고 김주완기자가 쓴 이 다큐는 2023년 1월 초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적 감동을 몰고왔다. 물론 나에게도 큰 감동의 쓰나미여서 결국 책을 사서 눈물을 훔치며 읽게 되었다.


그는 한약방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정치의 외압에도 요동하지 않고 철저히 교육적으로 운영하다 공공에 아낌없이 헌납했다. 또한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천여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각종 사회운동을 지원했으며, 형평운동기념사업 등을 설립하며 각별히 지원하고 참여한다. 자신은 자동차도 없이 항상 걸어다니고 가난 소박하게 살면서 혼신으로 벌어온 수백억을 가난한 사람과 사회정의를 위해 그 돈을 몽땅 지원한 사람, 바로 그 김장하 선생이야기가 <줬으면 그만이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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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가 흠모하고 존경해온 사람은 바로 백정들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양반이자 진주의 천석꾼이었던 감상호선생이었다. 더 알아보려고 <백촌 강상호>책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구입할 수 없어 가까스로 진주문고에서 어렵사리 한권을 구해, 받자마자 삼키듯 줄을 치며 읽었다.


천석꾼 강상호 집안에서 그의 어머니는 1917년 가뭄으로 이재민이 발생하자 가난한 마을주민들의 호세(주민세)를 대신 납부 해주는 일을 추진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시덕불망비>를 세우기까지 했다. 또 그의 아버지가 강재순은 <진주봉양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그의 남동생 둘은 일본 동경대에 유학을 가서 각각 문학과 미술을 전공했다. 경남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막내 동생 강신호는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 사망했고, 둘째 동생은 <강영호>는 방정환과 더불어 최초의 어린이운동을 조직인 <색동회>를 조직한 아동문학가로, 이후 항일운동으로 체포되기도, 광산 막장에서 피신해 일하며 고달픈 삶을 살다 결국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강상호는 아버지가 세운 <진주봉양학교>를 함께 설립 운영하고,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  진주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하다가 고문받고 투옥되어 1년선고를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나온 뒤, 신간회의 설립과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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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23년 4월에 한국에서 처음 형평운동을 주도했다. 후배인 신현수와 백정출신 이학찬, 장지필, 천석구등을 설득하여 설립한 이 운동은 2년만에 전국에 엄청난 기세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계급평등을 목적으로 한 초기 진주파와 백정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려는 서울파의 대립, 그리고 고려혁명당사건으로 서울파가 검거되고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으로 사회주의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회유와 탄압을 받아, 결국 형평사는 명칭도 대동사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이익단체로 변질되어 갔다.


해방되었지만, 진주에서 신망이 높은 그의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좌파와 우파들에 의해 동지로, 때로는 적으로 취급되면서 다시금 온갖 풍파와 시련을 겪게 된다. 진주에서 천석꾼의 거부였던 그의 집은 독립운동과 형평운동과정에서 모든 재산은 사라졌고, 결국 가난에 찌든 삶으로 산속 그의 처가에서 살게된다. 당시 아들이 고등학교입학금도 낼수 없는 궁핍한 생활로 살다 71세에 사망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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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맘하자. 진주시내에서 5일장을 치르며 전국의 수많은 백정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참배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서럽게 그의 죽엄앞에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실제 최근까지 아무런 표지석도 없이 쓸쓸했던 그의 묘지는 최근 김장하선생을 비롯한 뜻깊은 진주의 인사들이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묘지석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백촌 강상호>의 후반을 읽으며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진주>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경(모심)의 경(敬)과 정의(의로움)의 의(義)를 강조한 <남명 조식>의 제자들(홍의장군 의병 곽재구가 직속 제자)들이 임진왜란 당시 그리 많이 의병운동에 참여했다는 것, 또 진주는 1862년 삼도민란중에 가장 격렬했던 임술진주농민항쟁지였으며, <논개>로 대표되는 의로운 기생, 을사오적 이지용의 수청을 거절한 의기 <산홍>을 등이 바로 의로움의 전통이 흐르는 곳이었다.


김장하선생의 감동적 삶은 바로 강상호 선생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간다. 학교를 세우고 의로운 모든일에 아낌없이 재산을 기부하고 자신은 철저히 가난한 삶을 사는 그 궤적.


그러고 보니 나도 <진주 유씨>이기도 하고, 우리 할머니 강진순님이 강상호선생과 같은<진주 강씨>셔서 그 피가 내몸에 같이 흐른다고 할까. 

이 위대하고 소중한 분들을 생각하며 3.1 밤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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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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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님의 댓글

그루터기 작성일 Date

그루터기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정길입니다. 
<백촌 강상호>책을 찾다 찾다 못찾아 진주문고에 연락했더니 소중한 책을 구해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책을 잘 읽고 위의 글을 후기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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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고님의 댓글의 댓글

진주문고 작성일 Date

유정길 선생님, 소중한 후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