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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고성 상족암을 찾았어요. 우리나라 최대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 유명한 곳이죠. 해안누리길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걸으며 바다와 파도, 겨울새, 바위와 조약돌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새 발자국, 공룡 발자국, 물결 무늬, 층층이 쌓인 퇴적암에 새겨진 흔적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어요. 가장 여린 자리에 남겨진 기억이 몇만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단하게 남았다는 사실이요. 길을 걷다 발견한 몽돌 해변에는 수많은 돌탑이 쌓여 있어서 저도 친구들도 탑을 쌓고 돌아 왔어요. 기도나 소원, 담아두고 싶고 남겨두고 싶은 마음을 새기는 일이 새해 첫날에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여러 변화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더 다정하고 천진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해에 읽기 시작한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울창한 세계를 만드는 이의 눈동자 , <갈등하는 눈동자>
이슬아 작가가 쓴 열여덟 편의 에세이, 두 편의 강연록, 두 편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에요. 천진하고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계는 얼마나 크고 신비로워지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시선이라는 말, 응시라는 말, 보이지 않던 것들을 알아차리는 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을 깨닫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홍예린 선수의 격투기 은퇴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읽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어요.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장면과 이야기가 작가의 시선과 이해를 통해 어떻게 색과 빛을 얻게 되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에 실린 시각장애인 특수교사 김성은과의 인터뷰와 북토크 장면인데요. 이훤 시인의 사진과 함께 현장 인터뷰 음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큐알코드가 함께 실려있어 그 생생함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모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동시에 읽는 경험을 주는 강렬한 책이에요.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소설, <소프트 랜딩>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한 개인의 삶을 확장시키는 일이 있을까요?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하청 업체 소속의 계약직 노동자, 수인과 단아가 주인공인 소설 <소프트 랜딩>은 출발–비행–난기류–도착의 비행 과정에 비유해 두 인물의 감정선과 현실을 교차해 묘사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떠나는 일, 공항이라는 공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상황,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끌림과 열기에 물러서는 망설임”을 드러내는 감각적인 묘사가 어울려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커피값을 생각하며 데이트 횟수를 고민하는 인물들의 상황에서 <나는 솔로>나 로멘틱 코미디의 연예인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연애,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인물들과 함께 설레고 응원하고 안타까워하는 동안 그런 보통의 연애를 위협하는 세상의 불균형과 차별, 오해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내 속의 흔적들을 읽는 시집,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돌에게 마음을 준다. 빛나는 옷을 입힌다. 높다란 모자를 씌운다. 돌은 마음이 준 돌이고. 돌은 마음이 준 옷을 입고 있고. 돌은 마음을 입은 모자를 쓰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돌에게 마음을 쓴다. 살지 않는 돌에게 말을 건넨다. 마음을 쓰고 쓰면서 마음을 두드리고 두드린다.” - <돌이 준 마음> 중에서
가끔은 시를 읽는 게 작은 돌맹이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두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무게도 있고 형태도 있는 돌맹이. 하지만 이 돌맹이를 어떻게 읽어야 하지? 어떤 날은 얼굴 같았다가 어떤 날은 새, 어떤 날은 깃발로도 보이는 돌맹이. 골똘히 바라볼수록 다른 흔적과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돌맹이. 그럴 때 읽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돌맹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이 아닐까요? 이제니 시인의 시를 소리내어 읽을 때 그런 마음이 들어요. 슬픔과 상실이 기억과 애도로 드러나는 이 시집에서 리듬을 따라오는 것들을 바라보는 일, 읽어내는 일이 기도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또 어떤 리듬과 이야기로 다가갈지 궁금하네요.
매달 서경방송 동네책방에서 진주문고 이팀장님의 추천도서가 소개됩니다 :)
<동네책방> 본 방송시간 :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Ch8서경방송
#갈등하는눈동자 #소프트랜딩 #영원이미래를돌아본다
새해 첫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고성 상족암을 찾았어요. 우리나라 최대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 유명한 곳이죠. 해안누리길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걸으며 바다와 파도, 겨울새, 바위와 조약돌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새 발자국, 공룡 발자국, 물결 무늬, 층층이 쌓인 퇴적암에 새겨진 흔적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어요. 가장 여린 자리에 남겨진 기억이 몇만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단하게 남았다는 사실이요. 길을 걷다 발견한 몽돌 해변에는 수많은 돌탑이 쌓여 있어서 저도 친구들도 탑을 쌓고 돌아 왔어요. 기도나 소원, 담아두고 싶고 남겨두고 싶은 마음을 새기는 일이 새해 첫날에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여러 변화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더 다정하고 천진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해에 읽기 시작한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울창한 세계를 만드는 이의 눈동자 , <갈등하는 눈동자>
이슬아 작가가 쓴 열여덟 편의 에세이, 두 편의 강연록, 두 편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에요. 천진하고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계는 얼마나 크고 신비로워지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시선이라는 말, 응시라는 말, 보이지 않던 것들을 알아차리는 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을 깨닫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홍예린 선수의 격투기 은퇴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읽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어요.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장면과 이야기가 작가의 시선과 이해를 통해 어떻게 색과 빛을 얻게 되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에 실린 시각장애인 특수교사 김성은과의 인터뷰와 북토크 장면인데요. 이훤 시인의 사진과 함께 현장 인터뷰 음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큐알코드가 함께 실려있어 그 생생함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모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동시에 읽는 경험을 주는 강렬한 책이에요.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소설, <소프트 랜딩>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한 개인의 삶을 확장시키는 일이 있을까요?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하청 업체 소속의 계약직 노동자, 수인과 단아가 주인공인 소설 <소프트 랜딩>은 출발–비행–난기류–도착의 비행 과정에 비유해 두 인물의 감정선과 현실을 교차해 묘사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떠나는 일, 공항이라는 공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상황,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끌림과 열기에 물러서는 망설임”을 드러내는 감각적인 묘사가 어울려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커피값을 생각하며 데이트 횟수를 고민하는 인물들의 상황에서 <나는 솔로>나 로멘틱 코미디의 연예인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연애,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인물들과 함께 설레고 응원하고 안타까워하는 동안 그런 보통의 연애를 위협하는 세상의 불균형과 차별, 오해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내 속의 흔적들을 읽는 시집,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돌에게 마음을 준다. 빛나는 옷을 입힌다. 높다란 모자를 씌운다. 돌은 마음이 준 돌이고. 돌은 마음이 준 옷을 입고 있고. 돌은 마음을 입은 모자를 쓰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돌에게 마음을 쓴다. 살지 않는 돌에게 말을 건넨다. 마음을 쓰고 쓰면서 마음을 두드리고 두드린다.” - <돌이 준 마음> 중에서
가끔은 시를 읽는 게 작은 돌맹이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두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무게도 있고 형태도 있는 돌맹이. 하지만 이 돌맹이를 어떻게 읽어야 하지? 어떤 날은 얼굴 같았다가 어떤 날은 새, 어떤 날은 깃발로도 보이는 돌맹이. 골똘히 바라볼수록 다른 흔적과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돌맹이. 그럴 때 읽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돌맹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이 아닐까요? 이제니 시인의 시를 소리내어 읽을 때 그런 마음이 들어요. 슬픔과 상실이 기억과 애도로 드러나는 이 시집에서 리듬을 따라오는 것들을 바라보는 일, 읽어내는 일이 기도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또 어떤 리듬과 이야기로 다가갈지 궁금하네요.
매달 서경방송 동네책방에서 진주문고 이팀장님의 추천도서가 소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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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눈동자 #소프트랜딩 #영원이미래를돌아본다